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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된다는 것

먼 종소리 2019. 12. 11. 16:34

존 오트버그 <관계훈련>

 

몇 년 전, 온 가족과 함께 미국 서부로 창조과학탐사를 갔을 때, 그랜드캐년에서 노아의 홍수의 증거를 목격하고 하루하루 이어지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아담과 하와를 시작으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아둥바둥 했던 인간의 역사를 듣고 곱씹으면서 엄마가 던진 화두가 돌아와서도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죄 많고 말썽만 일으키고 속만 썩히는 인간을 만들어서 이 고생이시냐. 인간만 만들지 않으셨다면, 노아의 홍수든 바벨탑이든 그 모든 마음고생 없이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을 그대로 감상하면서 편안히 사실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으셨던 거겠지.”

 

정말로 하나님은 사서 고생을 하셨다. 우리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와 친밀해지길 원하셨고 친밀함의 열쇠인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 급기야는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곁에 오셨다. 진정 친밀함의 끝판왕이다. 그리하여 그 모든 대가를 치르고 우리에게 다가와 진짜가 되셨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도 진짜가 되었다. 마저리 윌리엄스의 벨벳 토끼 인형처럼.

 

날 때부터 연결되려는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가 매번 양육자의 거부를 겪게 되었을 때, 거부의 경험이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정체성의 일부로 자리를 잡으면 수치심이 된다.’(p.258) 그래서 나조차도 내가 싫고 아무도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짓 확신을 심어주게 된다. 이럴 때 유일한 답은 은혜라는 영적 경험이라고 한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시고 내 모든 수치를 아시는 그 분이 나를 내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다니. 그 자체로 너무나 감사한 은혜다. 그럴 때 가면 뒤에 숨어있던 내 가짜 자아가 빛 가운데로 나오고 하나님이 나를 지으실 떄의 원래 뜻하신 바대로 내 진짜 자아가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받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평생을 지탱해주는 자존감의 양분이 되어 주는 것을 알지만 부모조차도 아이에게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주기가 어려운 건 본인들도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연년생 동생 때문에(이제는 덕분에) 오랜 기간 외갓집에서 외할머니를 비롯한 외갓집 식구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아온 것이 내 자존감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몇 년 전 성경적 부모교실 세미나를 통해서 깨닫고 정말로 감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근심과 걱정, 자기 의심은 책에서 말하는 이른바 가면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들에게 인정 받으려고 열심히 살았지만 내가 사실은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남모를 믿음. 행여나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나면 사람들이 실망하고 돌아서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그래서 내 진짜 모습은 아무도 보지도 알지도 못하게 꽁꽁 숨기고 거짓 자아를 더 잘 꾸며서 인정받으려는 자기 기만. 친구들과 어른들의 착하다는 칭찬 속에 나를 꽁꽁 가둔 채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며 속앓이를 하는 어린 아이였던 나는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직장에서 상사와 불편한 관계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매일 되뇌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나에게 돌아올 비난이 두려워 그 말을 속으로만 삼키고 돌아선 적이 있다. 마음은 편치 않고 관계는 그냥 허공으로 증발되어버린 듯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상처받기 두려워 다가가지 못하고 진정한 친밀함 속으로 들어가길 포기한 채 나의 안위만을 생각한 결과였다.

 

진짜가 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진짜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정말 두렵다. 하지만 진정한 친밀함에서 우러나온 사랑은 우리를 진짜로 만든다고 했다. (p.333)

 

집에 들어가면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며 나를 꼭 껴안는 단비의 모습에서 나는 그 분의 사랑을 느낀다. 쌓여있는 그릇 더미에도 흔쾌히 고무장갑을 끼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설거지를 하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그 사랑을 느낀다. 사흘이 멀다 장바구니 가득 꾹꾹 눌러 담은 반찬과 국을 실어 나르시는 시어머님의 모습에서 그 사랑을 느낀다. 단비를 봐주시면서 꼭꼭 사진을 찍어 일하는 내게 매번 보내주시는 엄마의 카톡에서 그 사랑을 느낀다.

 

책에서 소개하는 소설 <The Boy in the Boat>의 조정팀 멘토가 자신을 남들에게 완전히 내어 주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자기답게 되는 순간이라고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p.306) 조정 경기에서 여덞 명의 선수들의 움직임이 완벽히 일치되는 스윙(swing)의 현상이 일어날 때만이 배가 물 흐르듯 부드럽고 우아하게 전진하고 배가 몸의 일부가 되어 저절로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럴 때만이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환희만 가득해지는 일종의 완벽한 언어, 시로 승화된다는 거다. ‘스윙은 가족 안에서도, 직장이나, 지역사회, 그 어떤 공동체 안에서도 선물처럼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과 인류, 모든 피조물이 정의와 조화, 만족, 기쁨 안에서 엮인 상태샬롬과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p.307)

 

진짜모습을 드러내고 경험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며 친밀한 관계를 쌓아가 그 안에서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면, 그리하여 내 마음의 사랑 탱크에 그 사랑이 가득 차오르고 넘쳐 흘러 다른 사람과 계속 친밀함을 형성하고, 이러한 친밀함이 또 울타리 밖으로 흘러 넘쳐 다른 누군가를 향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연결된다면 이런 스윙’, 샬롬의 순간을 맛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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