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Pray, Grow

손을 써서 얻는 마음의 평안, 세상의 평화 본문

책과 생각

손을 써서 얻는 마음의 평안, 세상의 평화

먼 종소리 2019. 10. 6. 07:50

릴리쿰 <손의 모험>

 

올 봄, 딸아이와 함께 문화비축기지에서 스트링아트 원데이 클래스에 참가한 적이 있다. 나무판에 못을 박고 못 사이에 형형색색의 실을 왔다갔다 얽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못을 삐뚤빼뚤 박아놓아 모양이 엉성해지긴 했지만 만들기를 끝내고 나니 오랜만에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냈다는 것, 아무것도 없던 나무판에 못과 실만으로 창작을 했다는 것이 너무나 뿌듯하고 보람되어 집에 와서도 나와 아이가 만든 작품을 책장 위에 세워놓고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없던 나는 만들기에 늘 자신이 없었다. 엄마가 하면, 동생이 하면, 친구들이 하면, 아주 근사한 작품이 만들어져 나오는데 내 손에서 나오는 창작물은 늘 어딘가 부족하고 어설펐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키보드만 두들기다 보니 손을 뭔가 달리 쓰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던 걸까. 언제부턴가 손을 쓰는 취미를 뭐든 배워보고 싶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회사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던 30대 초반 꽃꽂이를 4년 정도 배우기도 했고,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어 원데이 클래스를 두드렸다. 육아휴직 중에는 잼 만들기 클래스도 참여해보고, 캔들이나 비누 만들기 클래스도 오래도록 배우고 싶어 검색만 년을 하다가 결국 시기를 놓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우드 카빙이 너무 배워보고 싶어 인스타그램에서 어느 공방을 팔로우하며 눈팅만 열심히 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재주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끊임없이 만들기에 도전하려했나 생각해보면 만들기는 결과물이 잘 나오든 그렇지 않든, 나에겐 그저 치유의 한 방편이 아니었나 싶다. 상한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어지러운 머릿 속을 비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만들기에 집중하다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만큼 몰입할 때가 많은데 복잡한 생각을 잊게 하면서 만족감과 자긍심을 느꼈던 적이 많다.

 

이렇듯 늘 무언가 만들기를 배우고 싶어하는 내게 이 책 <손의 모험>은 못해도 괜찮으니 계속 시도해보라고 응원해주는 메시지 같았다. 나는 그저 몰입하여 즐길 수 있는 취미를 하나 찾고 싶다는 마음인 줄만 알았는데 만드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위대하고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지를 알고 나니 더더욱 손을 쓰는 행위를 많이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특히나 소비 활동으로만 채워져 있는 우리네 일상에서 손을 써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 천편일률적인 기성품이 아닌 나만의 온기가 서린 핸드메이드 작품으로 기존의 환경파괴적이고,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달콤하고 매력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예전 직장 동료가 새 아파트를 분양 받고 드디어 입주할 때가 되어 받게 된, 고급스러운 케이스 속의 유명 아파트 로고가 새겨진 열쇠 사진을 올린 포스트를 보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집을 산 것이, 그것도 유명 브랜드의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이 온 천하에 자랑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 친구를 비난하거나 냉소할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저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자랑거리가 되고, 자신을 보여주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는 게.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사회 속의 일원으로 소위 '심리적 진부화의 무기'라고 하는 광고를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 자신이 소유한 것을 불만족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결국 그들의 소비욕을 자극해 꼭 필요하지 않아도 더 좋은 것을 새로 구매하게 만드는 일을 하면서 이러한 소비 지향의 사회가 잘 굴러가도록 열심히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씁쓸해진다.

 

이 책에서 던지는 화두, '왜 우리는 소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뇌리에 꼭 박히면서 내 삶도 전적으로 소비가 아닌, 자급자족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해야하고 필요한 일이 아니라 놀이처럼 잉여롭게 원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고, 또 그것을 주변에 공유하면서 삶의 문제들을 직접 해결하고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정말 시도해봄직한 일이다.  나의 잉여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만들기가 무엇일지 더 진지하게 찾아보고 싶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