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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살롱 글 모음

<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 소모임 살롱 글 모음

먼 종소리 2022. 12. 4. 16:30

첫번째

"'더 많은 사람이 가진 것이 더 좋은 걸까?'
아이에게 이런 질문들이 생길 때, 나는 작은 코도 갈색 얼굴도 멋지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아이가 당연히 겪어야 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의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만 보는 일은 아이를 가로막고 보여주지 않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아이가 상처나 결핍 없이 자라기를 바라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아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의 수많은 다양성 안에서 밝은 기운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는 아이에게 "넌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야"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이로부터 친구들은 다 갖고 있거나 다 하는 걸 나는 왜 못 가지고 못 하냐는 질문을 요즘 들어 많이 받는다. 자신만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아직 여덟 살 아이에게는 어려운 일일 터.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남들과 다른 모습일 때, 남들과 다른 위치에 있을 때, 남들은 다 가진 걸 나는 가지지 못했을 때, 남들은 으레 하는 것을 나는 정말 기를 쓰고 노력해도 안 될 때, 그런 나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특히나 대세를 따르는 걸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튀지 않게 사는 게 미덕인 한국 사회에서 말이다.

나는 어쩌자고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다르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가끔 마음이 참 어려워질 때도 있다.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결정을 지금껏 후회하진 않지만 그러기 위해선 정말 큰 용기와 세상의 시선에 무덤덤 할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또 하나 경제력도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아이를 다르게 키우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은 오롯이 그 비용을 개인이 감당할 수 밖에 없기 떄문이다. 다른 피부색과 국적의 이민자로 해외에서 살고 있는 저자의 어려움만큼이야 하겠냐마는 나도 이따금씩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면서 부딪히는 다양한 갈등을 아이가 잘 겪어낼 수 있기를 바라지만 나 역시 그럴 때 덤덤하게 아이를 믿고 뒤에서 바라봐주는 부모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아직 자신은 없다. 그렇게 기도만 할 뿐.

 

9/28 두번째날
"사실 그들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활을 걸고 이곳에 앉아 있지만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언어 능력 향상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우리는 결코 다르지 않았다. 언어는 어느 순간 내 삶의 윤활유가 아니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생계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나이, 피부색, 언어, 삶의 모습 등 공통점이라곤 하나 없는 우리가 이탈리아어로 함께 이야기하며 웃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것 같았다. 우리, 하고 말하니 정말 우리가 된 것 같았다."


저자가 언어 수업을 받는 모습을 상상하다 보니 서른 초반에 혼자 도쿄에서 3개월 체류하면서 어학원을 다녔던 생각이 떠올랐어요. 당시엔 '한달살이'나 '살아보는 여행' 그런 말이 아직 나오기도 전이었는데 그냥 정말 일본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새 직장으로 가기 전, 갭먼쓰가 있어서 무작정 짐을 싸들고 한인 기숙사 방 하나를 얻어서 살았더랬죠. 당시에 어학원에 가면 한국인, 태국인이 제일 많았는데 그 사이에 한 이탈리아 남성이 한 명 있었어요. 발음은 어색했지만 정말 열심히 공부하던 모습이 생각나요. 어학원에 있으면 모두가 어눌한 일본어로 소통을 하는 모습이 생경하고 참 신기하기도 했는데요. 할 수 있는 말이 제한적이다보니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정말 단순해지고, 또 때로는 답답하기도 해서 오히려 모국어로 생각도 더 많이 하고 글도 더 쓰게 되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서툰 일어로 소통하며 같이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 때의 추억이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어요. 그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그 중엔 일본에서 어떻게든 정착해서 자리를 잡아야 할 사람도 있었는데 과연 비자도 잘 받고 일본 사회에 잘 어울려 살고 있을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서 이제는 유창한 실력이 되어 있지 않을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9/29 세번째
"내가 네 살 때는 축구를 잘 못하니까 애들이 골키퍼만 하라고 했거든? 그런데 네 살부터 골키퍼를 한 거잖아. 오래 했으니까 지금은 잘하게 된 거지. 그때 많이 했으니까 잘하게 된 거야."


이안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부정적인 감정에 매여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모든 상처가 흉터를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주인공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비극적인 소설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역경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상처받기가 두려워서 마음을 졸일 게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지 기대해보는 것도 좋겠다. 상처가 난 부위에서 튼튼한 새살이 올라오는 것처럼. 이안의 늘어난 인대가 그를 축구 영웅으로 만들어준 것처럼.
어쩜 이안이는 이렇게 성숙할 수 있을까요? 책 곳곳에서 이안의 말을 보면서 참 많이 배웁니다. 싫어도 할 수 있는 걸 꾸준히 최선을 다해서 마침내 좋은 열매를 맺는 삶. 꼭 원하는 일이 아니었더라도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열심을 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상처를 딛고 배우고 성장하는 삶. 정말 천은님 말씀처럼 어제의 성애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네요.

 

네번째

너무 오래 빼먹었지만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들어와서 남겨 봅니다. ㅋㅋ
진도와 상관없이 해도 괜찮겠지요? 


"... 천사는 돌을 치워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돌을 만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직접 대면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배우면서 자라도록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오늘의 돌이 내일의 산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아이들은 등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고 생각해야지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를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린 삶이라는 여행을 통해 우리 자신을 알아가야 합니다. 질문은 중요합니다. 질문은 언제나 우리를 삶에 더욱 깊이 들어서도록 합니다. 위기는 아이들을 성장시킵니다. 어려움과 함께 머무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자갈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제발, 돌을 치워주지 마세요."


이제 갓 두 돌이 지난 둘째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넘어지는 게 일상이다. 오늘도 저녁을 먹는 내 옆에서 타요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신이 나서 춤을 추다가 혼자 넘어져서 식탁 다리에 얼굴을 박고 놀란 토끼눈을 하며 날 바라봤다. 내가 그저 '아고 아야 했어? 괜찮아, 괜찮아. 다시 춤 춰봐.' 하면서 주의를 돌리니 이내 웃으며 다시 몸을 흔들어대는 아이. 길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괜찮아. 일어나서 손 털자.' 하면 얼른 일어나서 두 손을 탁탁 털고 가던 길 가는 아이. 아직은 내가 괜찮은 건지도 모른다. 아이가 어딘가 걸려 넘어지고 부딪혀도 크게 다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좀 더 커서 진짜 험한 자갈길을 걸어갈 때, 그 때도 나는 아슬아슬 걸어가는 아이를 붙잡지 않고 뒤에서 가만히 응원해주고, 행여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아이의 삶에 다가오는 질문들 앞에서 스스로 답하도록, 그 어려움 속에 머물도록 가만히 바라봐주기만 할 수 있을까.
여덟 살 첫째가 가끔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 아이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 아이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을 정도라며. 오늘 미술 수업에선 그 아이와 짝꿍을 했는데 너무 힘들었더라며. 하지만 그럴 때 나는 내가 어디까지 도와줘야 할 지 참으로 난감하다. 선생님한테 이야기해보라고 슬며시 미뤄두긴 하지만 혼자서 관계의 어려움을 잘 감당하고 배우도록 놔두는 게 맞을지, 아니면 선생님과 의논하는 게 맞을지 도통 감이 안 온다. 아이 발 앞의 돌을 치워주지 않는 것. 생각만큼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아이가 커가면서 더 느끼게 된다.
사실 어른이 되어서도 내 앞의 작은 자갈 하나 어쩌지 못하는 내가 무슨 아이의 돌까지 신경 쓸 수 있겠냐 싶다.  아직도 내 앞에 쌓여있는 삶의 질문들 앞에서 답을 찾지 못해 계속 서성대며 돌밭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말이다. 그저 내가 그 길에서 주저앉지 않고, 발이 너무 아프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밖에.

 

다섯번 째

"팬데믹을 겪으며 알았다. 인생에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걸. 불확실이 디폴트가 되어버린 세상에 무모하다는 이유로 도전을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었다.
"너에게 아름답다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방법으로 해나가면 된다"라는 코라도 씨의 말에 세상과 타인에게 속수무책으로 일렁이던 우리 마음의 풍랑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낯선 방식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며 전염을 피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만 했고 그로 인해 일상의 반경은 전보다 훨씬 더 좁아졌음에도, 우리는 그 반경 안에서 무수히 많은 인연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놀랍게도 우리가 향하고 있는 새로운 방향과 맞닿아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낯설고 두렵지만 동시에 가슴 뛰는 일이다. 긴 순례를 마친 우린 그대로 우리지만, 여전한 우리는 아니다. 더 이상 겁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에게 우리 삶이 아름다워 보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이 책은 창고살롱 이번 시즌과 찰떡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니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그 한 가운데로 뛰어드는 것. 스스로에게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 그러면서 나의 세계의 반경을 넓히고, 내 인생의 진폭을 늘려가는 것. 그런 삶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귀한 영감을 주는지..
나도 작년 한 해 코로나 시대가 불을 지핀 비대면의 연대를 한껏 느끼고 누렸던 것 같다. 갓난 아이 수유를 하면서 내내 집순이로 살아도 삶의 시야가 지구 반대편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내 삶의 지경을 넓혀준 랜선으로 만난 다양한 인연들이 어찌나 감사했던지. 그 중심에 창고살롱이 있다. 내가 향하는 새로운 방향과 맞닿아 있는 곳. 새로운 도전 앞에 따뜻한 지지와 응원을 아낌없이 부어주는 이곳이 정말 너무 귀한 것 같다.
제 글의 마지막은 결국 창고살롱에 대한 사랑고백으로 마무리되네요. 다음주 모임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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