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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레퍼런스 살롱> 홍현진 '쉴 줄 모르는 여자의 번아웃 관통기' 후기 & 사후과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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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레퍼런스 살롱> 홍현진 '쉴 줄 모르는 여자의 번아웃 관통기' 후기 & 사후과제

먼 종소리 2021. 12. 25. 05:05

어제 현진님의 레퍼런스 살롱을 아이를 재우며 귀로만 들었는데 진짜 도플갱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몰입해서 들었네요. 살롱지기로서 워낙 진행을 잘하시고 말씀도 청산유수로 잘 하셔서 현진님이 굉장히 외향적인 분인 줄로만 알았어요. 근데 '분주한 내향인'이라고 하셔서 어찌나 동질감 느껴지던지요. 하나만 하지 못하고 그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메인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스케일로) 이어 가시면서 숨구멍을 찾으셨다는 이야기 정말 깊이 공감됐어요. 저도 그렇게 바쁜데 뭘 그렇게 이것저것 일을 벌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사실은 그런 사이드 프로젝트가 실상 나를 살아 숨쉬게 해준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몰라주거든요. 그래서 이런 딴짓들로 창업을 해서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러면 더 이상 이것들이 숨구멍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숨막히게 하면 어떡하지..란 생각도 하곤 했어요.


잘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하고 싶은 일을 모두 일치 시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창업을 선택했지만 그 일을 너무나 잘하고 싶은 나머지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가다 번아웃을 맞으신 현진님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아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일과 나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의 가치를 나의 일, 나의 성취로만 규정한다면 일을 잘해내기 위해 영혼까지 갈아 넣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거겠죠.


저 역시 한때는 아이 유치원에서 하는 부모 참관 수업도 못 갈 정도로 회사에 몸 바쳐 일한 적이 있어요. 당시 싱글 여성 팀장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중요한 프로젝트 중간에 아이 때문에 반차를 쓰겠다 (연차도 아니고!!)는 말을 도저히 못하겠더라구요. 저도 어제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복직을 하면서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모토가 '티를 내지 말자'였어요. 엄마인 티, 아이를 걱정하는 티, 육아가 힘든 티,  등등 여러가지로 티를 내지 말고 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가정적인 아빠인 티 팍팍 내는 남자 직원들에 대해선 너무나 멋지다는 생각을 하는 제 자신을 보게 됐죠. 회식 중간에 딸 생일이라면서 일찍 자리를 뜨는 옆팀 남자 팀장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으면서도 막상 저는 그렇게 손들고 아이 때문에 먼저 가야된다는 말을 죽어도 못하겠는 이 모순적인 마음. 다들 아시겠죠? ㅠㅠ


그렇게 티 안내고 일을 하다 보니 육체적 감정적 번아웃을 피해갈 리가 없죠. 저도 번아웃 세게 맞고 급기야 첫째가 학교 입학하면 써야지 하며 아껴뒀던 5개월의 육아휴직을 내고 말았어요. 2년 전 일이긴 한데 그 때 휴직을 하면서 팀장님한테 도망가는 거냐는 말을 듣기도 했죠. 당시엔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휴직계를 내긴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도망 좀 가면 어떠냐는 생각이 듭니다. ㅋㅋ 일이 나의 삶 전부가 아니고, 직장인 말고도 나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인데 왜 나는 오직 일로서만 나의 가치를 평가받으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래서 또다시 번아웃이 온다면 과몰입한 그곳에서 잠시 줌아웃하면서 제 자신을 들여다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나의 가치를 그곳에서만 찾으려 하지 말자.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소중한 존재다!"


이번에 다시 복직을 하고나면 당직 대신 서 준 현진님의 그 은혜로운 선배와 같이 저 역시 후배들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제 제 나이대의 여직원이 그닥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회사에서 그래도 제가 퇴준맘이라 외치면서도 버티고 남아 있는 건 저같이 티는 엄청 날 지언정 일을 놓지 않는 여자 선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도 있기 때문이거든요.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물론 있지만요.
그리고 현진님이 글을 연재하며 또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로 숨구멍을 찾으신 건 정말 지혜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해도 그렇게 순수하게 나의 즐거움 만을 위한 딴짓은 꼭 필요하겠구나란 걸 느끼며 저 역시 사부작 사부작 저만의 딴짓을 계속 해나가야지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현진님의 귀한 서사 나눠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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