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Pray, Grow

우리 모두의 사월 본문

일상 단상

우리 모두의 사월

먼 종소리 2021. 4. 18. 05:55

 

"2014년 4월 16일,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감독은 '그동안 피해자도 아니고 유가족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힘들까, 감히 내가 힘들어도 되는 걸까'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시사인 인터뷰 '당신의 사월은 아직 아프다') 그런 ‘힘듦’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날의 기억을 소환시키는 영화 <당신의 사월>을 봤다. 창고살롱의 한 멤버의 제안으로 이뤄진 온라인 공동체 상영회를 통해서이다. 이 다큐 영화는 꼭 같이 볼 때 힘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며 용기를 내어 함께 보기를 제안한 멤버의 글에 여러 명의 멤버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나도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더없이 기쁘고 감사하여 바로 신청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고요한 나만의 시간에 보고 싶어서 17일 새벽녘에 혼자 일어나서 노트북을 켰다.

 

직접적인 피해자도, 유가족도 아니지만 배가 침몰하는 광경을 목격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그들도 오랜 아픔을 품고 살아왔음을 그들의 언어로 전하며 또 다른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 <당신의 사월>. 이 영화는 우리 모두가 그 참사의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당사자라고 말해준다. 감독을 비롯해 '감히 내가'라는 생각을 했던 주인공들도 7년 전 그 참사로 그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고,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날의 기억을 잊지 않고 계속 떠올리면서. 

 

그동안 세월호에 대해 어떠한 글도 쓰지 못했다. '감히 내가'란 생각이 나 역시 있었고 목구멍에 뭔가 걸린 듯 답답한 마음이 오래 지속되었지만 어딘가에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특히 걸렸던 부분은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의 말을 잘 듣고 진짜로 가만히 있어서 사고를 당했다며 피해 학생들을 고지식한 모범생 프레임으로 바라봤던 시각이었다. 그들 모두 가라앉는 배 안에서 처절하게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였을 텐데 결국 말 잘 들어 수장되고 만 어리석은 희생자의 이미지로 다 같이 매도되어 버린 것이 못내 가슴 아팠다. 그러니 우리는 아이들을 착한 모범생으로 키워선 안 된다는 말 역시 진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닌 우리 모두를 저격하는 씁쓸한 결론이었다. 

 

왜 그렇게 그 이야기가 내내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늘 나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안내 방송의 지시를 따르다가 끝내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지 않았을까란 섬뜩한 생각에까지 자연스레 다다르곤 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범생이로 자라서 취업을 하고 회사에선 매뉴얼대로, 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무력한 우리네 직장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서 일까. 

 

그날 난 부천의 회사 콜센터에서 고객 전화를 받고 있었다. 배정된 날에 부천으로 출근해 하루 종일 CS 체험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내내 긴장 상태로 있어 핸드폰을 볼 여유도 없던 데다 사고 소식을 얼핏 듣긴 했지만 곧 구조되겠지 생각하며 당장 내 발등의 불을 끄기 바빴던 것 같다. 교육을 받고 몇 건의 콜을 직접 응대하기도 했는데 잔뜩 화가 난 고객에게 험한 소릴 들으면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매뉴얼대로 접수 건을 처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같은 시간 진도 앞바다에선 삼백 명이 넘는 무고한 생명이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몰하는 배 안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가라앉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유가족들에겐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날의 참사를 목격한 우리 모두가 함께 트라우마를 겪은 당사자들이고 그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부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며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보자고 제안한다. '내가 감히 아파도 돼?'가 아니라 아파도 된다고, 다 함께 아파왔다고, 아직도 아프다고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주디스 허먼이 '회복에는 기억과 애도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처럼 그래야만 진정한 회복이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기억과 애도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록관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은 기록을 하며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데 자기 몫의 기여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이야기한다. 중학교 선생님은 매해 학교에서 인권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세월호 추모 행사를 연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했던 통인동 커피공방 사장은 여전히 마을 가게들과 함께 노란 리본 포스터를 나누며 추모 활동을 한다. 인권운동가는 세월호 유가족의 곁을 지키며 계속 기록 작업을 해나간다. 단원고 학생 지성이의 시신을 수습했던 진도 어민은 지성이의 아버지를 비롯해 유가족이 오면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곳을 내어준다. 

 

4년 전 4월, 제주도 한달살이를 할 때 아이를 데리고 세월호 기억공간 re:born에 갔던 것도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잊지 않기 위한 생생한 기억의 몸부림'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공간에서 아이는 고래 인형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왜 그렇게 고래가 많이 매달려 있는지 아이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난 속으로 다짐했다. 늘 잊지 말자고. 6년 전 4월엔 '세월호 기억의 숲' 조성에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후원을 했다. 엄마가 되어 참사 1주기를 맞이한 내가 갓 태어난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그 뿐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2021년 4월 내가 할 수 있는 기억과 애도는 무엇일까. 이 영화의 온라인 공동체 상영회에 참여한 것도 그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 것도. 

 

"다시 사월이 오면 슬프지만, 이는 우리가 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각자가 가진 고통과 슬픔을 일상에서 마주 보면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우리 모두의 사월은 함께 슬픔을 나누며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을 느끼는 시간이기에. 

 

 

 

 

'일상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돌아볼 수 있던 시간  (0) 2021.04.20
그렇게 햇님이를 떠나 보냈다  (0) 2021.04.12
퇴사 준비는 곧 나를 찾는 과정  (0) 2021.04.08
복직 첫 달 현타 맞은 이유  (4) 2021.04.07
그냥 좋은 글  (0) 2021.04.0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