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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단상

퇴사 준비는 곧 나를 찾는 과정

먼 종소리 2021. 4. 8. 23:22

"5년 후엔 어떤 모습이든 지금과는 달라져 있으리라!"

 

2017년 봄, 회사에서 5년마다 한 달씩 주는 안식월에 세 살 된 아이와 함께 제주 한달살이를 하고 돌아왔다. 거의 독박 육아를 하며 지냈지만 모처럼 둘이 온전히 붙어 지냈다. 아이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고, 나로서도 오랜만에 재충전을 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업무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줌 아웃한 상태로 나의 일을 돌아보니 몽글몽글 수많은 생각이 피어올랐다.

 

3년 차 워킹맘으로 정신없이 지내는 사이 바야흐로 30대의 마지막 해, 나는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10년 전,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공부했지만 어느덧 배운 걸 써먹으며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에는 이미 유통기한이 끝난 듯한데... 빠르게 변하는 마케팅 업계에서 나는 뒤처지지 않고 과연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여기서 성장하고 있나. 지금 당장 이직을 시도한다 해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마케터일까. 이직이 아니라면 나한테 남은 옵션은 뭘까. 이게 바로 3말 4초에 온다는 커리어 사춘기인가. 

 

어느 것 하나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한 채로 내린 결론이 바로 이거였다. 어떤 모습이 되어 있든 지금 이대로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지금 이 상태로 시간만 흐르면 결국 5년 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며 안식월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이다. 지금부터 뭐든 탐색하고 준비해서 5년 후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자. 원하는 일을 찾아서 새로운 커리어 여정을 시작한 상태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여전히 이 회사에 남아 있다고 해도 무엇이든 넥스트 커리어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진 상태였으면 했다. 

 

그리하여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날부터 퇴사 준비생으로의 삶이 시작되었다. 아이도 막 어린이집에 들어가서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는 시점이었기에 그나마 나를 좀 더 챙길 수 있는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5년 후 지금과 다른 모습이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우선 나를 들여다보는 게 필요했다. 도대체 내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강점은 무엇인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 나를 잘 알아야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큰 맘 먹고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마음성장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8주간 다양한 책을 통해 스스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진짜 자아를 발견하는 코칭 프로그램이었다. 

 

"저는 8주 과정이 끝나고 나면 진짜 제가 원하는 일과 하나님이 내게 맡기실 소명을 찾고 그 일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가지고 한 발짝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엄마나 아내로서의 역할을 부담으로 느끼지 않고 억지로 노력하는 것이 아닌, 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도 좋은 엄마나 아내가 되는 방법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첫 수업이 끝나고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기대하는 바를 남기는 숙제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김은미 작가님은 진정한 나의 욕구를 알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고 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니.

 

이제껏 나는 욕구를 충족시키며 사는 삶은 나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이 아닐까란 편견이 있었다. 당장의 욕구보다 더 큰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왔다. 그런데 내 욕구를 채우며 사는 삶이 타인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행복한 청소부>의 청소부가 바로 그런 빛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이 튀어 나올 듯한 표정으로 호기심과 열정 가득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그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데 나 역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지막에 그가 내린 선택은 진짜 자신을 잘 아는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용기이지 않았을까.  

 

"나는 하루 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행복한 청소부> 중에서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일이 온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다. 그리고 세상에서 좋아보이는 일이 아닌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하면서 나답게 살고 싶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탐하지 않고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장착한 채로 말이다. 그럴려면 5년이 더 걸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천천히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괜찮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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