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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단상

그렇게 햇님이를 떠나 보냈다

먼 종소리 2021. 4. 12. 15:16

 

2018년 여름, 유산을 했다.

 

그 해 봄, 입사 이후 최대의 위기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후 또다시 위기가 올 줄은 몰랐다는..) 내가 맡았던 앱 마케팅 업무를 전면 재검토하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과연 그 많은 비용을 쓰는 게 합당한 것이었나. 회사는 그동안 나를 비롯해 나의 전임들이 수년간 해왔던 일이 도대체 가치가 있는 일이었냐며 따져 묻기 시작했다. 나는 주어진 목표를 향해 무작정 달리다가 갑자기 급브레이크가 걸려 '끼익' 멈춰 섰다. 대행사에 연락을 돌려 모든 비용 집행을 홀딩했다. 언제 재개할지는 모르겠다며. 

 

주말은 반납하기 일쑤였다. 아이를 시댁에 맡겨 놓고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는 날엔 키즈카페에서 아이를 풀어놓고 나는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데이터만 보면 토가 나올 것 같았지만 밤에도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재우고 책상에 앉았다. 그렇게 지난한 두 달의 시간이 지나 최종 보고가 끝났을 땐, 완전히 번아웃 상태였다. 그때 아이가 생기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첫째 때의 입덧 지옥에 버금가는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다. 속이 비면 비어서 울렁거리고, 먹으면 먹은 대로 올라왔다. 아 또다시 시작이구나. 하지만 회사에는 최대한 12주까지 버틴 후에 알려야겠다 싶었다. 이제야 업무를 재개하고 새로운 테스트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테스트는 개발 이슈로 아주 더디게 진도가 나갔다. 뭔가 하려고 하면 새로운 이슈가 튀어나와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임신 이야기를 하면 갑분싸~ 완전히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될 것 같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눈치를 볼 일이었나 싶다. 팀장님이나 실장님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주실 분이란 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몇 달간 업무를 중단한 채 쉼 없이 보고서를 쓰고 고치고, 보고하고 깨지기를 반복하면서 바닥을 친 자존감에 마음이 콩알만큼 쪼그라든 상태였다. 일도 진척이 안 되는데 임신까지 했다고 하면 내가 윗사람이라고 해도 한숨부터 나오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입덧은 이런 내 상황을 봐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배 멀미하는 사람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조금이라도 속이 비면 구토가 마구 올라왔다. 일하는 틈틈이 입에 뭐라도 넣어주면서 속을 다스려야 했다. 더운 여름날 퇴근길에 입덧이 항상 절정이었는데 갑자기 심하게 쏠려서 입을 틀어막고 건물 화장실로 뛰쳐 들어간 적도 있다. 빈 속이 너무나 메쓱거려 눈에 보이는 국숫집에 들어가 혼자 칼칼한 국수를 먹고 나온 적도 있다. 직장 근처여서 동료 커플을 만난 적도 있는데 말은 안 했지만 영락없이 퇴근길에 혼자 저녁을 때우는 모습이었을 거다. 지하철에서 너무 험한 꼴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너무나 아깝지만 택시를 타고 기진맥진하여 집에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같은 팀 동료와 사내 강연을 들으러 가면서 물과 귤을 주섬주섬 싸는 걸 들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임신한 사실을 알리고 축하를 받았지만 다른 팀원이나 팀장님에겐 비밀을 지켜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힘든 건 점심시간이었다. 인턴 한 명과 멘토와 멘티로 매칭이 되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연결해주기 위해 점심 약속이 줄줄이 있던 시기였다. 많이 먹으면 꼭 구토가 올라와 먹는 양을 조절하면서, 조심조심 속을 다스리면서 괜찮은 척 여러 사람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신기하게 입덧이 잦아들었다. 어라, 이번에는 입덧이 빨리 끝나는 건가. 속이 좀 편안해지니 살 것 같았다. 점심 먹을 때도 먹는 양이 자연스레 늘어났다. 첫째 때 거의 만삭 때까지도 입덧을 달고 살았던 나는 이렇게 금방 입덧이 끝나는 거구나 감사해하며 일에 더 몰두할 수 있었다. 

 

하지만 10주차에 들어선 어느 날, 화장실에서 하혈한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과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계속 교차하면서 퇴근을 했는데 저녁 늦게 배가 싸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아직 병원에 정기검진 하러 가는 날이 남았지만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가기로 했다.

 

선생님은 약간 하혈을 하고 배가 좀 아팠다는 나의 말에 초기에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초음파를 배에 대자마자 '어라, 왜 이렇게 작지' 하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소리를 켰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 선생님은 혹시 모르니 질 초음파를 다시 보자고 하셨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누워서 다시 보자고 하셨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머릿속이 멍해지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진료실 문을 나왔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쪽 구석에 서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고 있는데 누군가가 냅킨을 손에 쥐어주고 갔다. 그 순간 눈물샘이 터져 버렸다. 마구 마구 폭포같이 쏟아졌다. 소식이 궁금해서 전화를 한 남편에게 울먹이며 오늘 바로 소파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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